AI, 중추신경계 감염 원인·예후 예측 시대 열었다…연세대 의대팀, 뇌척수액 3D 이미지 기반 모델 개발
인공지능(AI)이 중추신경계 감염의 ‘퍼즐’을 풀어내는 데 또 한 발짝 다가섰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이 뇌척수액에 존재하는 면역세포의 3차원(3D) 구조 이미지를 활용한 AI 모델을 통해 중추신경계 감염의 원인을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고, 질환 예후까지 조기에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제 복잡하고 비특이적인 증상에 가려 오진 가능성이 높았던 중추신경계 감염 환자에게 보다 빠르고 정확한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게다가 감염 원인 예측 정확도는 최대 99%, 예후 예측은 94%에 달해 의료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 AI 기반 뇌척수액 정밀분석…중추신경계 감염 진단에 ‘정확도’를 품다
이번 연구는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박유랑 교수,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김경민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최보규 강사가 공동으로 주도했다. 이들은 뇌척수액(CSF, cerebrospinal fluid) 내 면역세포의 형태학적 특성에 주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염 시 뇌척수액에서 면역세포들의 형태, 배열, 상호작용 패턴이 달라지는 점에 착안해 각각의 세포를 3D 이미지 데이터로 변환하고, 딥러닝 기반 알고리즘을 학습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AI는 감염이 바이러스성인지, 세균성인지 구분하며,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예후)을 평가할 수 있다.
기존 진단 방식은 임상 증상, 영상 검사, 뇌척수액의 생화학적 수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결과 확인까지 수시간~수일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이 AI 모델은 초기 뇌척수액 검사 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환자 상태를 분류할 수 있다.
■ “감염원 구분 정확도 99%, 예후 예측 94%”…의료 현장서 가능성 높아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AI 모델이 감염의 원인을 구분하는 정확도는 최대 99%에 달했다. 뇌수막염, 뇌염 등 중추신경계 감염 질환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 원인이 다양하고, 초기 증상이 비슷해 진단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 AI는 뇌척수액 속 세포 수준의 변화를 정밀하게 분석해 이런 복잡성을 극복해낸 것이다.
또한 향후 환자의 의식 저하, 인공호흡기 필요 여부 등의 예후까지 예측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예후 예측 정확도는 최대 94%로 나타났다. 이로써 중환자실 입원 여부 결정, 집중 치료 시작 시점 등을 선제적으로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기존 기술 한계 극복한 ‘진일보한 접근’
기존에는 PCR, 배양 검사 등의 분자진단 기술이나 MRI, CT 같은 영상진단 장비가 주요 진단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빠르고 정확한 감염원 구분에 한계가 있었고, 영상 검사로는 염증의 형태만 확인할 수 있어 근본적 원인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반면 이번에 개발된 AI 모델은 감염된 개별 면역세포의 미세구조 패턴에서 원인을 찾아낸다. 이는 표면적인 조직 구조 평가에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세포 수준의 역동적 정보를 직접 분석한다는 점에서 한층 진보한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성과가 “AI 기반 정량 영상 정보 해석 기술의 미래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평가한다. 의료데이터의 해석 능력은 AI의 핵심 장점 중 하나이며, 진단 속도와 정확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 현장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
물론 상용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환자 데이터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기관 시험을 통해 모델의 외부 검증을 거쳐야 한다. 또한 검사 장비가 고도화된 대학병원이나 대형 의료기관에 집중돼 있어 일선 의료시설까지 확산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다.
그러나 중추신경계 감염은 조기 치료가 예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이기에, 이 AI 시스템은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의료진에게 ‘선제적 치료 전략’의 무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연구는 기술적 성과를 넘어, 중증 신경 질환 진단의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서 주목할 만하다. 환자의 생명을 가를 수 있는 초기 진단에서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면, 이는 곧 환자의 생존율 향상으로 직결된다.
의료와 AI의 만남이 가져올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특히 뇌처럼 복잡한 장기를 다루는 분야에서 AI의 언어로 해석된 ‘세포의 목소리’는 가장 확실한 진단 단서가 될 수 있다. 의료계가 이와 같은 기술을 어떻게 임상에 통합해나갈지, 그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