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감염병, 조용한 대유행…서울대병원 “생활습관 병들다”
코로나19 이후 거리엔 마스크가 벗겨졌지만, 몸속에서는 또 다른 감염이 시작됐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피로, 고혈압, 당뇨, 지방간이었다. 의학계는 이것을 ‘조용한 팬데믹’이라 부른다. 대한의학회(2024)는 “감염병보다 무서운 것은 비감염성 만성질환의 확산”이라고 경고했다. 병원은 줄지 않았고, 약봉지는 늘어났다. 체온은 정상이지만, 대사는 망가졌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2024)는 “한국의 성인 3명 중 1명은 비만 또는 대사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50대 이상 남성의 42%가 복부비만 기준(허리둘레 90cm 이상)에 해당한다. 같은 보고서에서 고혈압 유병률은 31%, 당뇨병은 13%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보다 각각 1.4배, 1.8배 늘어난 수치다. 질병관리청(2024)은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7개가 비감염성 질환”이라며, 뇌혈관질환·심장질환·암·만성호흡기질환·당뇨병이 전체 사망의 8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WHO(2023)는 “비감염성 질환은 전 세계 사망의 74%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이는 전쟁, 사고, 감염을 모두 합친 수치보다 높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고령화 속도가 빠를수록 비감염성 질환의 발생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하버드의대 공공보건대학원(2023)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사회에서는 의료비의 절반 이상이 만성질환 관리에 쓰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이미 2025년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으며, 그 비용의 파고가 시작됐다.
대한내과학회(2024)는 “비감염성 질환의 원인은 나이도, 유전도 아니다. 습관이다”라고 명시했다. 실제로 하루 앉아 있는 시간이 8시간 이상인 집단은 4시간 미만인 집단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1.9배 높았다. 운동부족과 과식, 스트레스, 불면이 결합하면 대사는 혼란에 빠진다. 서울성모병원 예방의학과는 “비감염성 질환은 생활의 불균형이 만든 생리적 피로의 누적”이라며 “현대인의 신체는 이미 스트레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질환들은 느리게 시작되지만, 돌이킬 수 없다. 대한당뇨병학회(2023)는 “전당뇨 상태로 진단된 환자의 40%가 5년 내 당뇨병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체중 증가보다 ‘근육량 감소’가 더 위험하다. 근육이 줄면 인슐린 감수성이 떨어지고, 지방이 연소되지 않는다. 하버드 뉴트리션센터(2024)는 “근육량이 10% 감소할 때마다 대사율이 8% 저하된다”고 제시했다. 이는 곧 체중 유지가 아닌 ‘근육 보존’이 만성질환 예방의 핵심임을 의미한다.
생활습관은 사회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장시간 노동, 늦은 퇴근, 배달음식, 카페인 과다 섭취가 일상의 리듬을 무너뜨린다. 대한예방의학회(2024)는 “한국 직장인의 68%가 주중 평균 수면시간 6시간 미만이며, 그중 절반이 고혈압 전단계 소견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운동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쉴 시간이 없어서 병든다.
의료현장에서는 ‘비감염성 질환의 사회적 처방’이 논의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심혈관센터는 2023년부터 ‘생활 리듬 처방’ 프로그램을 도입해 식사 시간, 수면 패턴, 이동 동선까지 관리한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의 체중은 평균 3.2kg 감소했고, 혈압은 9mmHg 낮아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2024)은 “생활 리듬 처방은 개인이 아닌 사회 환경을 바꾸는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질병은 개인의 나쁜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피로의 산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대한의료정책연구원(2024)에 따르면 비감염성 질환의 사회경제적 부담은 연간 125조 원에 달한다. 이는 국가 GDP의 약 5.8% 수준이다. 특히 고혈압·당뇨·이상지질혈증 3대 질환 관리비용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고령화 속도보다 더 빠른 것은 의료비 상승이다. WHO는 “2030년까지 아시아 지역의 의료비는 현재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경고했다.
그럼에도 해결책은 단순하다. 대한비만학회(2024)는 “하루 30분 걷기, 주 3회 근력운동, 7시간 수면이 비감염성 질환 위험을 40% 줄인다”고 밝혔다. 이는 약보다 확실한 처방이다. 문제는 지속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3개월 안에 그만둔다. 서울성모병원 연구팀은 “습관은 동기보다 환경이 결정한다”며 “가정과 직장, 도시 구조가 건강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감염성 질환은 치료가 아닌 재설계의 영역이다. 개인의 의지를 넘어 사회의 리듬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시간의 균형이 무너진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감염은 외부에서 오지만, 비감염병은 내부에서 자란다.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몸은 약을 기억하지 않는다. 몸은 균형을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