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연구팀, 26년간 환자 78명 재분석…영아형 교종만 생존율 높아

병원소식

소아 악성 뇌종양의 진단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1997년부터 2023년까지 수술받은 소아 뇌종양 환자 78명의 조직을 최신 WHO 기준으로 다시 분류한 결과, 과거 교모세포종이나 원시신경외배엽종양으로 불렸던 사례의 절반 이상(52.6%)이 ‘소아 고등급 교종(pediatric high-grade glioma, pHGG)’으로 새롭게 분류됐다.
이는 기존의 성인 기준으로 진단·치료하던 관행이 소아에게는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결과다.


과거 ‘교모세포종’의 절반이 새 질환군으로 이동

이번 연구는 서울대어린이병원 김승기·김주환 소아신경외과 교수, 박성혜 병리과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연구팀은 WHO의 최신 ‘중추신경계 종양 제5판(CNS5)’ 기준을 적용해 기존 조직 샘플을 분자유전학적으로 재분류했다.
그 결과 전체 78명 중 41명(52.6%)이 소아 고등급 교종(pHGG)으로 재분류됐다. 세부적으로 ▲H3 K27 변이 광범위 정중선 교종(DMG-H3K27) 11명 ▲H3 G34 변이 반구 교종(DHG-H3G34) 5명 ▲H3/IDH 야생형 광범위 교종(DpHGG-H3wt/IDHwt) 15명 ▲영아형 대뇌반구 교종(IHG) 10명으로 나뉘었다.
이 중 TP53 변이는 70.8%에서 발견됐으며, 특히 H3/IDH 야생형 교종 환자의 절반은 리프라우메니증후군, 신경섬유종증 1형, 유전성 불일치복구결핍증후군 등 암소인증후군(Cancer Predisposition Syndrome)을 동반해 가족 단위의 유전자 검사와 상담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영아형만 생존율 높아…다른 아형은 예후 불량

예후 분석 결과, 아형별 생존율은 극명히 달랐다.
영아형 대뇌반구 교종(IHG)의 2년 생존율은 92.3%, 5년 생존율은 73.8%로 다른 아형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반면 H3K27 변이 정중선 교종이나 H3G34 변이 반구 교종은 2년 생존율이 20% 이하에 그쳤다.
또한 수술로 완전 절제(GTR)에 성공한 환자군이 비절제 환자군보다 생존율이 유의하게 높았다. 이는 종양의 위치와 수술 범위가 예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영아형 교종은 성장기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심각한 인지·발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수술 범위와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 강도를 개별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 CNS5, ‘소아형 교종’ 개념으로 질환 지형 재편

2021년 WHO CNS5 개정판은 뇌종양 분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기존에는 성인과 소아를 구분하지 않고 ‘교모세포종(glioblastoma)’으로 진단했지만, 이제는 성인형과 소아형 교종을 별도로 구분한다. 특히 ‘소아형 광범위 고등급 교종(pediatric-type diffuse high-grade glioma)’이라는 새 질환군을 신설해, 성인 기준이 아닌 분자유전학적 특성 중심의 진단 체계로 전환했다.
이는 치료 전략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성인 교모세포종에서 효과적이던 항암·방사선 치료가 소아형 교종에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
즉, 단순히 병리 진단명이 바뀐 것이 아니라 예후 예측과 치료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EBM 관점에서 본 임상적 의미

근거중심의학(EBM) 관점에서 이번 연구는 세 가지 핵심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진단 기준의 분자화(molecular stratification)를 통해 환자 집단 간 생존율 차이를 명확히 규명했다.
둘째, 유전성 요인(CPS)과의 연관성을 밝혀, 향후 가계 단위의 선별검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셋째, 치료 강도와 예후 간 상관관계를 근거로 방사선·항암 치료의 맞춤형 적용 근거를 강화했다.
이는 ‘한 가지 치료가 모든 환자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EBM 원칙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과거 성인 기준의 일률적 치료 대신, 유전자 변이·발병 연령·수술 범위에 따른 세분화된 치료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맞춤형 치료 시대의 분기점

이번 연구는 소아 악성 뇌종양의 분류 체계를 정밀의학 시대에 맞게 재정립한 국내 첫 대규모 분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소아 고등급 교종(pHGG)은 전체 소아암의 20%를 차지하고, 여전히 소아기 암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이번 WHO 기준 적용으로 질환 특성과 생존율의 구조적 차이가 드러나면서, 향후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의 기반이 마련됐다.
서울대병원 김승기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과거 ‘소아 교모세포종’으로 통칭되던 질환군을 분자 병리학적으로 다시 정의한 것으로, 환자 맞춤 치료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