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동 부모 3명 중 1명꼴 정신건강 어려움… “지원, 가족 단위로 넓혀야”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아동을 돌보는 부모 가운데 약 3명 중 1명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국내 일반 성인의 정신질환 유병 수준과 비교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로, 자녀 지원에 머물렀던 기존 정책을 부모와 가족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유희정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를 국제 학술지 **‘자폐 및 발달장애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16일 밝혔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반복적 행동 양상과 제한된 관심,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특징인 신경발달장애다. 최근에는 자폐 특성이 개인을 넘어 가족 안에서 함께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이어지면서, 자폐 아동 부모가 겪는 스트레스의 배경에도 부모 자신의 신경발달적 특성이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목받아 왔다.
연구팀은 자폐 아동의 특성뿐 아니라 부모 자신의 특성이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 232명과 부모 464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과 심리평가를 진행했다. 이어 부모의 정신건강 증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부모 가운데 29.1%가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수면 문제 등 임상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021년 국민건강 관련 조사에서 집계된 일반 성인 정신건강 유병률 8.5%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자폐 아동 부모의 스트레스가 단순히 아이의 행동 문제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부모의 정신건강과 자녀의 자폐적 행동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하지만, 부모의 ‘광의의 자폐 성향’ 변수를 함께 반영하자 자녀 행동 특성이 미치는 영향은 크게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부모 자신의 광의의 자폐 성향은 정신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광의의 자폐 성향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낮은 관심, 혼자 하는 활동 선호, 규칙과 일관성에 대한 높은 선호, 대화 맥락 파악의 어려움, 상황에 맞는 언어 사용의 어려움 등으로 설명되는 신경발달적 특성을 뜻한다. 연구팀은 특히 화용적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정신건강 문제와 가장 강한 관련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같은 특성을 지닌 부모는 자녀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비언어적 신호나 감정의 맥락을 읽는 데 상대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정신건강 문제 유병률은 남성 부모가 22.8%, 여성 부모가 35.3%로 집계돼 여성의 취약성이 더 두드러졌다. 세부적으로는 어머니 집단에서 불안, 우울, PTSD 경향이 더 높았고, 아버지 집단에서는 중독 문제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흐름을 보였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도 부모 성별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아버지는 자녀의 공격성이나 충동성 같은 외현적 행동 문제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고, 어머니는 우울감이나 정서 조절의 어려움처럼 내면적, 심리적 어려움에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양육 과정에서 아버지는 행동 관리, 어머니는 정서적 돌봄을 더 많이 맡는 현실이 이런 차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연구를 이끈 유희정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지원 정책이 그동안 아동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부모의 정신건강과 삶의 질 문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모의 심리적 안정이 아동의 정서와 행동 발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앞으로의 지원 체계는 자녀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를 함께 돌보는 방향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