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으로 4명 살린 40대…뇌사 뒤 어떤 절차를 거쳤나
-배달 중 교통사고 당한 최정섭씨, 심장·간·양쪽 신장 기증
-뇌사는 식물상태와 달라…1·2차 조사와 뇌사판정위원회 거쳐 확정
-기증자가 수혜자 직접 정하지 않아…응급도·혈액형·대기기간 등으로 국가가 배정
하루 14시간 넘게 배달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40대 가장이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장기를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렸다. 감동적인 사연이 알려지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지만, 실제 뇌사 장기기증이 어떤 절차를 거쳐 이뤄지고 누가 기증을 결정하며 장기를 받을 사람은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등에 따르면 최정섭씨(46)는 지난 7월 17일 밤 배달 업무 중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7월 24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심장과 간, 양쪽 신장을 기증했다. 하나의 신체에서 기증된 네 개의 장기가 각각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되면서 4명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됐다.
장기기증 과정은 가족이 기증을 희망한다고 곧바로 수술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뇌사 여부를 의학적으로 엄격하게 확인하고 기증 동의를 받은 뒤 신체검사와 조직적합성 검사, 국가 장기이식 시스템을 통한 수혜자 선정, 장기 적출과 이식 준비가 연속적으로 진행된다.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기증자의 사망 판단과 장기 배분 과정은 각각 독립적인 절차와 기준에 따라 관리된다.
뇌사는 단순히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장기기증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개념은 뇌사와 식물상태다. 두 상태 모두 환자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의학적 의미와 회복 가능성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뇌사는 뇌 전체의 기능이 돌이킬 수 없게 소실된 상태를 의미하며, 자발적인 호흡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심장박동과 혈액순환이 일정 기간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식물상태는 심각한 뇌손상으로 의식과 인지기능을 잃은 상태이지만 뇌간 기능이 남아 있어 자발적으로 호흡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장기간 생존하거나 일부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장기간 의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뇌사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뇌사 장기기증은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뇌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소실됐다는 사실을 별도로 확인한 뒤에만 가능하다.
이 차이는 장기기증 논의에서 특히 중요하다. 식물상태 환자를 뇌사자로 판단해 장기를 기증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으며, 뇌사 여부는 장기기증 의사와 별개로 독립된 의학적 판단절차를 거쳐야 한다.
장기기증은 ‘사망 판단’부터 별도 절차를 거친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공개한 뇌사 장기기증 절차를 보면 잠재적인 뇌사 기증자가 발생한 뒤 먼저 장기기증 동의를 확인하고 신체검사와 조직적합성 검사를 실시한다. 이후 뇌사판정을 위한 1차와 2차 뇌사조사를 진행하고, 다시 뇌사판정위원회의 판단을 거쳐 뇌사 여부가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장기기증을 원한다는 사실과 뇌사판정 자체가 서로 다른 절차라는 점이다. 환자 본인이 생전에 장기기증 희망 의사를 밝혔거나 가족이 기증에 동의했다고 해서 뇌사 기준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뇌사판정이 엄격하게 운영되는 이유는 장기기증이 가능한 상태인지 판단하기 이전에 환자의 사망 자체를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기증은 그 이후에 진행되는 절차다.
따라서 언론보도에서 흔히 사용되는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를 기증했다’는 표현에는 실제로 여러 단계의 의료적·법적 절차가 포함돼 있다. 하나의 판단이나 한 명의 의료진이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기증희망등록을 했으면 가족 동의는 필요 없을까
장기기증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혼동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생전 장기기증 희망등록과 실제 기증 사이의 관계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자신이 사망하거나 뇌사 상태에 이르렀을 때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미리 표시하는 제도지만, 그것만으로 실제 기증절차가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장기기증 동의는 본인이 생전에 서명한 문서나 법정 유언 방식으로 할 수 있으며 가족이나 유족도 법이 정한 순서에 따라 동의할 수 있다. 가족 또는 유족의 경우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 친족 순으로 선순위 1명의 서면동의가 기준이 된다.
실제 뇌사 기증 현장에서는 기증자의 생전 의사를 확인하고 유족과의 상담을 거쳐 절차가 진행된다. 장기기증은 가족에게도 갑작스러운 죽음과 기증 결정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에 전문 코디네이터가 의료진과 가족 사이에서 절차를 설명하고 의사를 확인한다.
이 때문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법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표시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자신의 생각을 미리 공유하는 계기로도 의미가 있다. 실제 상황에서 가족이 처음으로 기증 의사를 접하는 것보다 생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눠두는 것이 의사결정 과정의 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장기를 기증하면 누가 받을지는 누가 정하나
장기기증이 결정된 뒤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절차가 시작된다. 기증된 심장과 간, 신장을 누구에게 이식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기증자나 가족이 특정 환자를 직접 지목해 뇌사자 장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뇌사 장기기증의 배분 원칙이 아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국가 장기이식정보시스템을 통해 대기자 가운데 의학적 기준에 맞는 이식 대상자를 선정한다.
선정기준은 장기마다 다르지만 의학적 응급도와 혈액형, 기증자와 수혜자의 지리적 거리, 대기기간, 각종 평가점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먼저 장기이식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은 뒤 이식대기자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의 목적은 희소한 장기를 개인적인 관계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배분하지 않고 의학적 필요성과 이식 가능성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배분하는 데 있다. 국가는 장기를 단순한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성이 강한 생명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심장·간·신장은 같은 기준으로 배정되지 않는다
장기마다 기능과 보존 가능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수혜자 선정 방식과 이식 준비에도 차이가 있다. 심장은 환자의 상태가 위급하고 적출 이후 신속한 이송과 이식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과 거리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간과 신장 역시 혈액형과 의학적 적합성, 응급도 등 여러 조건을 함께 고려한다.
하나의 기증자에게서 여러 장기를 기증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병원의 환자들에게 이식되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장기에 적합한 수혜자가 국가 시스템에서 선정되면 해당 수혜자가 있는 이식의료기관에서 수술 준비를 하고, 필요한 의료진이 장기 적출과 이송 과정에 참여한다.
신장은 양쪽을 각각 다른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명의 뇌사 기증자가 두 명의 신장질환 환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최씨가 심장과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해 4명에게 장기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기증 의사가 있다고 해서 모든 장기가 반드시 이식되는 것은 아니다. 감염 여부와 장기 기능, 기증자의 건강상태 등을 검사한 뒤 실제 이식이 가능한 장기만 사용되며, 최종적으로 이식 여부가 결정된다.
기증 수술까지는 여러 의료기관이 동시에 움직인다
뇌사판정과 기증 동의가 완료되면 장기 적출과 이식을 위한 준비가 동시에 진행된다. 기증자가 있는 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장기 기능 평가를 실시하고, 국가 시스템에서는 이식대상자를 선정하며, 수혜자가 있는 병원은 이식수술을 준비한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절차를 보면 이식대상자가 결정된 뒤 해당 의료기관에 대상자 정보가 전달되고, 수혜자 상태를 다시 확인한 뒤 장기 적출팀이 기증자가 있는 병원으로 이동한다. 이후 장기를 적출해 신속히 이송하고 수혜자의 이식수술을 진행하게 된다.
여러 장기를 동시에 기증하는 경우에는 각 장기를 담당하는 의료진과 이식병원의 일정이 정밀하게 맞물려야 한다. 장기는 몸 밖으로 나온 뒤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적출부터 이송, 이식까지의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기증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치료가 끝난 직후 여러 의료진이 장기별로 움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장기를 적출하는 하나의 수술이 아니라 여러 병원의 의료진과 국가 장기배분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는 과정이다.
기증이 끝나면 가족에게 시신이 인도된다
장기기증을 고민하는 가족들이 갖는 걱정 가운데 하나는 장기 적출 이후 장례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다. 뇌사 장기기증 절차가 끝나면 의료진이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기증자의 시신은 유족에게 인도된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공개한 절차에도 장기 적출 이후 유족에게 시신을 인도하는 단계가 명시돼 있다.
정부는 뇌사 장기기증자의 유족에게 장제비와 진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뇌사 장기기증이 실제 이식으로 이어진 경우 장제비 360만원과 진료비 180만원을 지원하며, 장기와 인체조직을 동시에 기증한 경우에는 별도의 지원기준이 적용된다.
이 지원은 장기를 사고파는 대가가 아니라 기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비와 장례 관련 부담을 지원하는 제도다. 국내 장기기증은 다른 사람의 기능 회복을 위해 대가 없이 장기를 제공하는 행위로 규정돼 있으며 금전거래를 전제로 한 장기매매와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뇌사 장기기증과 일반 사후기증도 다르다
장기기증이라는 표현 때문에 사람이 사망한 뒤에도 심장이나 간, 신장을 기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장기의 종류에 따라 조건이 다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은 신장과 간, 췌장, 심장, 폐 등 주요 고형장기는 사망 전 뇌사 상태에서 기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심정지 사망 이후에는 이러한 장기의 기능을 이식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안구는 일반적인 사망 이후에도 일정 시간 안에 기증할 수 있으며 인체조직 역시 별도의 조건에 따라 사후 기증이 가능하다. 안구의 경우 사망 후 12시간 이내, 인체조직은 기증절차 진행을 위해 사망 후 15시간 이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연락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후 장기기증’이라는 표현 하나로 모든 기증을 동일하게 이해하기보다는 뇌사 장기기증과 안구·인체조직 기증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기증 뒤에는 국가 배분체계가 있다
최정섭씨의 사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네 명의 다른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기증을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명나눔 제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선의만큼이나 판정과 배분 과정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뇌사는 의식이 없는 상태를 느슨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의학적 조사와 위원회 판단을 거쳐 확정된다. 기증 여부 역시 본인과 가족의 의사를 확인하고, 기증 가능한 장기의 상태를 검사한 뒤 결정된다.
수혜자는 기증자 가족이나 의료진이 임의로 선택하지 않는다. 국가 장기이식 시스템에서 장기별 기준에 따라 응급도와 혈액형, 거리, 대기기간 등을 고려해 선정되며, 각 이식병원이 다시 수술 가능성을 확인한 뒤 실제 이식이 진행된다.
따라서 뇌사 장기기증은 한 가족의 결단만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아니다. 사망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의료체계와 희소한 장기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국가 시스템, 실제 이식을 수행하는 의료기관이 함께 작동해야 비로소 한 사람의 기증이 다른 사람의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씨가 남긴 심장과 간, 두 개의 신장은 네 사람에게 전달됐다. 개인의 마지막 선택이 생명을 잇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결정을 공정하고 안전하게 실행하기 위해 설계된 여러 단계의 장기기증 체계가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