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호사 해외채용 늘리면 끝일까…세계가 ‘의료인력 두뇌유출’을 걱정하는 이유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하면 해외에서 채용하면 되지 않을까.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고 자국에서 필요한 만큼의 의료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해법이다.
실제로 의료인의 국제 이동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일하는 이주 의사와 간호사 수는 지난 10년 동안 약 60% 증가했다. WHO는 앞으로도 의료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국제 이동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한 나라가 해외에서 의료인을 데려오는 순간 다른 나라에서는 그 의료인이 빠져나간다.
특히 의사와 간호사가 이미 부족한 저소득 국가에서 인력이 대거 떠나면 남아 있는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까지 악화될 수 있다.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다시 주목받으면서 WHO 회원국들은 지난 5월 ‘국제 의료인력 채용에 관한 글로벌 행동규범’을 개정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해외채용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다.
인력을 받는 국가가 단순히 부족한 사람을 데려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인력을 보내는 국가의 보건의료 체계에도 함께 투자하도록 국제적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다.
세계에는 의료인이 7000만명 넘는데도 부족하다
WHO가 집계한 전 세계 보건의료 인력은 현재 7000만명을 넘어선다.
그런데도 부족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WHO는 2030년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보건의료 인력이 약 1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부족분은 특히 저소득·중저소득 국가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인이 절대적으로 적은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에, 어느 지역에, 어떤 직종의 인력이 배치돼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WHO 자료를 보면 고소득 국가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조산사, 치과의사, 약사 등 주요 의료인력이 평균적으로 약 64명당 1명꼴이지만 저소득 국가에서는 약 621명당 1명 수준으로 격차가 크다.
한편 고소득 국가 역시 고령화와 의료수요 증가, 의료인력의 고령화 등으로 부족을 겪고 있다.
유럽 지역만 해도 WHO는 2030년까지 약 95만명의 의료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회원국에서는 의사의 40% 이상이 55세를 넘은 상황이다.
결국 의료인력이 부족한 나라가 부족한 다른 나라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 나라의 해결책이 다른 나라의 부족을 키울 수 있다
의료인의 국제 이동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의사와 간호사는 더 높은 임금과 나은 근무환경, 전문교육 기회를 찾아 이동할 수 있다.
이주한 의료인이 본국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도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 기술과 경험을 쌓은 뒤 귀국해 의료체계 발전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동 규모가 해당 국가가 새 인력을 양성하는 속도를 넘어설 때다.
의사 한 명을 키우는 데는 오랜 교육기간과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저소득 국가의 정부와 대학이 세금과 공공재정을 투입해 의사를 교육했는데 졸업 후 상당수가 고소득 국가로 이동한다면 교육 투자로 얻을 혜택은 인력을 채용한 국가가 가져가게 된다.
WHO는 과거 의료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국가에서 OECD 국가로 이동한 의사와 간호사가 빠르게 늘었으며, 이런 이동이 일부 국가의 인력 부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해왔다.
이른바 ‘의료인력 두뇌유출’이다.
WHO가 16년 만에 채용 규범을 손본 이유
WHO는 2010년 세계보건총회에서 ‘국제 의료인력 채용에 관한 글로벌 행동규범’을 채택했다.
국제적으로 이동하는 의료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의료인력이 이미 부족한 국가에서 무분별하게 인력을 끌어오는 일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이 규범은 법적으로 해외채용을 금지하는 협약은 아니다.
국가가 따라야 할 윤리적 원칙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국제적 행동규범에 가깝다.
그런데 의료인력 이동이 훨씬 복잡해지면서 2026년 WHO 회원국들은 규범을 다시 손봤다.
5월 제79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채택된 개정안에는 세 가지 변화가 특히 눈에 띈다.
국제적으로 채용돼 돌봄 종사자로 일하는 인력을 규범 안에 명확하게 포함했고, 감염병 유행이나 다른 보건 비상상황에서도 국제채용 원칙을 적용하도록 했다.
또 인력을 채용하는 국가와 보내는 국가가 모두 혜택을 얻도록 보건의료 인력과 보건시스템에 ‘공동투자’하는 원칙을 강화했다.
‘간호사를 데려갔으니 간호대학에도 투자하라’는 논리
공동투자의 개념은 의료인력 이동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예를 들어 고소득 국가 A가 간호사가 부족해 국가 B에서 대규모로 간호사를 모집한다고 가정해보자.
A국은 빠르게 부족 인력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B국 입장에서는 자국 대학에서 교육한 간호사가 계속 빠져나가 병원의 인력난이 심해질 수 있다.
기존 방식에서는 이를 각 나라의 노동시장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새로운 접근은 다르다.
A국이 B국에서 지속적으로 의료인력을 채용한다면 B국의 간호교육 확대와 교원 양성, 병원 근무환경 개선, 추가 인력 육성에도 함께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WHO가 이번 개정에서 ‘비례적인 이익’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채용이 인력을 받는 나라에만 이익이 되고 인력을 보내는 나라에는 손실만 남는 구조를 피하자는 것이다.
의료인의 ‘떠날 자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의료인력의 해외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 역시 노동자다.
더 높은 임금과 안전한 근무환경, 전문교육, 개인적인 삶의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에서 일할 자유가 있다.
국가가 많은 비용을 들여 의료인을 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이동을 강제로 막는 것은 또 다른 권리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WHO의 접근도 의료인에게 “떠나지 말라”고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채용국에는 윤리적으로 인력을 모집하고, 이주 의료인이 현지인과 동등한 노동권과 근무조건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며, 자국 인력 양성과 유지에도 충분히 투자하도록 요구한다.
인력 유출국에는 의료인이 떠나는 이유 자체를 줄이기 위한 근무환경과 보상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문제의 초점을 개인의 선택보다 국가 간 시스템에 두는 것이다.
돈을 더 주는 나라로 이동하는 것만도 아니다
최근 의료인력 이동은 과거처럼 저소득 국가에서 고소득 국가로 이동하는 단순한 일방향 구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WHO는 남반구 국가 사이의 이동, 같은 지역 내 이동, 심지어 고소득 국가에서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사람이 여러 국가에서 의료면허를 갖고 일하거나 일정 기간만 해외에서 근무하는 형태도 늘고 있다. 의료교육 자체도 국제화되면서 외국에서 의학이나 간호학을 공부한 뒤 다른 나라에서 취업하는 경로가 확대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다.
WHO 유럽지역 자료에서는 10년 사이 이주 의사가 58%, 이주 간호사는 67% 증가했다.
따라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의료인을 빼간다’는 설명만으로는 현재의 의료인력 이동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인력이 원래 부족했던 국가일수록 몇 명의 이동이 의료체계에 미치는 충격이 훨씬 크다는 구조적 문제는 남는다.
왜 이번에는 ‘돌봄 인력’까지 포함했나
2026년 개정에서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돌봄 노동자의 포함이다.
세계 각국에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병원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장기요양시설과 가정에서 노인을 돌보는 인력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에서 의료인 자격을 가진 사람이 이주한 뒤 현지에서는 간호사가 아닌 돌봄 노동자로 일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출신 국가에서는 전문인력 한 명이 빠졌지만 채용국에서는 더 낮은 직무로 활용되는 이른바 ‘기술 낭비’ 문제도 발생한다.
WHO가 개정 규범에 국제적으로 모집돼 돌봄 업무를 수행하는 의료인력을 포함한 것은 의료인력 이동이 병원 안의 의사·간호사 문제를 넘어 장기요양과 돌봄시장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감염병 유행 때 해외채용이 더 민감한 이유
보건 비상상황도 새 규범이 강조한 영역이다.
코로나19 같은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하면 거의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의료인력이 필요해진다.
이때 경제력이 강한 국가가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해 다른 나라 의료인을 대규모로 채용하면 인력을 보내는 국가의 대응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
특히 이미 의료인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의사나 간호사 몇 천명의 이동이 중환자실과 응급실, 지역 보건시설 운영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이 보건 비상상황에서도 국제채용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이런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감염병은 국경을 넘는데 대응 인력까지 한쪽으로 집중된다면 국제 보건안보 전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해외에서 데려오면 된다’는 계산에는 빠진 비용이 있다
해외채용은 인력 부족을 빠르게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정책이다.
국내에서 의사나 간호사를 새로 교육하려면 수년이 걸리지만 이미 면허와 경력을 가진 인력을 채용하면 비교적 빠르게 현장에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해외채용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자국의 교육 정원과 근무환경, 이직률, 지역 배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외부 인력으로 빈자리를 메우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
WHO가 2010년 규범부터 각국에 다른 나라의 교육 노력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자국 의료인력을 계획적으로 양성할 것을 강조해온 이유다.
의료인력 국제채용은 부족의 원인을 해결하는 정책이라기보다 부족의 위치를 다른 나라로 옮기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도 먼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 의료인력 시장의 변화는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병원뿐 아니라 장기요양과 재택돌봄에서 필요한 인력이 함께 늘어난다.
지역별 의료인력 격차가 커지면 해외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도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해외 의료인력을 채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해외에서 온 의료인의 자격과 교육을 어떻게 인정할지, 환자 안전을 위한 언어와 임상교육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지, 현지 인력과 차별 없는 노동조건을 보장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동시에 어느 국가에서 어떤 인력을 데려오는지, 해당 국가의 의료인력 부족을 더 악화시키지는 않는지도 국제보건의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WHO가 올해 국제규범을 개정한 이유도 결국 각 나라가 자국의 인력난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의료인력도 세계가 함께 쓰는 자원이 됐다
세계 의료인력 이동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WHO가 전망하는 2030년 부족 인력은 약 1100만명이고, 이미 OECD 국가에서 일하는 이주 의사와 간호사는 지난 10년간 약 60% 늘었다.
경제력이 높은 국가가 더 높은 임금을 내세우면 국제 의료인력 시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료인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
한 나라에서 의사 한 명이 빠져나가는 것은 단순히 노동자 한 명의 이동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수천명의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역량이 이동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려는 의료인의 권리를 막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2026년 WHO 개정 규범이 제시하는 해법은 ‘이동 금지’보다 ‘책임 있는 이동’에 가깝다.
인력을 채용하는 나라는 해외 인력을 값싸고 빠른 대체재로만 보지 않고, 인력을 보내는 나라의 교육과 보건시스템 강화에도 함께 투자해야 한다.
인력을 보내는 나라 역시 열악한 임금과 과도한 업무, 부족한 전문교육 기회처럼 의료인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
세계의 의료인력 부족을 어느 한 국가가 해외채용으로 해결했다고 해서 전체 부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빈 병상을 채우기 위해 다른 나라의 병원을 비우는 방식이라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이동했을 뿐이다.
국제 의료인력 정책의 새로운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려왔느냐가 아니라, 그 이동 뒤에도 출신국과 채용국 모두의 의료체계가 더 지속가능해졌느냐가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