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미만 8만명 사망…겸상적혈구병, 치료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접근성’

–2021년 5세 미만 사망 약 8만1100명
-전 세계 환자의 약 80%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집중
-WHO, 9개월 이상 소아·청소년에 하이드록시우레아 적극 권고
겸상적혈구병은 치료법이 전혀 없는 질환이 아니다. 이미 오랫동안 사용돼 온 하이드록시우레아가 있고, 예방접종과 감염관리, 조기진단을 결합하면 중증 합병증과 조기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그런데도 2021년 전 세계 5세 미만 어린이 가운데 약 8만1100명이 겸상적혈구병과 관련해 사망했다. 치료제의 존재와 실제 치료 접근성 사이에 큰 간극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WHO는 9월 1일 소아 겸상적혈구병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발표했다. 핵심은 하이드록시우레아를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임상지침을 강화하고, 어린이가 실제로 복용하기 쉬운 제형을 개발·공급하며, 품질이 보장된 제품의 조달 경로를 확대하는 데 있다. WHO는 전 세계 겸상적혈구병 환자의 약 80%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고 보고 있다.
겸상적혈구병은 어떤 질환인가
겸상적혈구병은 HBB 유전자 변이로 인해 적혈구가 정상적인 원반형 대신 낫 모양으로 변하는 유전성 혈액질환이다. 변형된 적혈구는 혈관을 막거나 쉽게 파괴돼 심한 통증과 빈혈, 뇌졸중, 감염, 장기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어린이는 감염과 중증 빈혈에 취약하다. 치료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반복적인 통증발작과 입원, 수혈이 필요할 수 있고 조기사망 위험도 높아진다.
WHO는 겸상적혈구병을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유전성 혈액질환으로 보고 있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환자는 약 774만명, 신규 출생은 약 51만5000명으로 추정됐다.
문제는 환자의 약 80%가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있다는 점
겸상적혈구병의 질병부담은 지역적으로 매우 불균형하다. WHO는 전체 환자의 약 80%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분포한다고 보고 있다.
질환 부담이 가장 큰 지역이 의료 인프라와 진단체계, 의약품 공급망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과 겹친다는 점이 문제다.
고소득국에서는 신생아 선별검사와 예방접종, 항생제 예방요법, 정기 추적진료, 하이드록시우레아 사용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일부 저소득국에서는 질환 자체를 진단하지 못하거나, 진단하더라도 지속적인 약물치료와 혈액검사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WHO는 이 같은 격차 때문에 겸상적혈구병이 여전히 예방 가능한 소아 사망과 장애의 주요 원인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2021년 5세 미만 사망 약 8만1100명
WHO 자료에 따르면 겸상적혈구병은 2021년 5세 미만 어린이 사망 약 8만1100건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됐다. 전체 질병부담을 반영하면 이 연령대 사망원인 가운데 12번째 수준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공식 사망통계가 실제 질병부담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WHO는 2021년 겸상적혈구병과 관련된 전체 사망이 약 37만6000명으로 추정되지만, 직접 사망원인으로 기록된 사례는 약 3만4400명에 그쳤다고 설명한다.
질환이 감염이나 빈혈, 뇌졸중 등 다른 원인으로 기록될 경우 겸상적혈구병의 실제 영향이 통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드록시우레아는 이미 효과가 확인된 약이다
하이드록시우레아는 겸상적혈구병 치료에 사용돼 온 대표적인 질병조절 치료제다. 태아혈색소를 증가시키고 적혈구의 겸상화를 줄여 통증발작과 급성흉부증후군, 입원, 수혈 필요성을 낮추는 효과가 확인돼 있다.
WHO는 2026년 5월 발표한 첫 소아·청소년 겸상적혈구병 통합 지침에서 겸상적혈구빈혈을 가진 9개월 이상 19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임상적 중증도와 관계없이 하이드록시우레아 사용을 강하게 권고했다.
이는 증상이 심해진 뒤 약을 사용하는 방식보다 질환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해 합병증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준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왜 약이 있는데도 사망은 줄지 않나
가장 큰 이유는 약의 존재와 접근성 사이의 차이다.
WHO는 효과적인 치료가 있어도 조기진단과 포괄적인 진료, 질병조절 약물 접근성에 상당한 불평등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하이드록시우레아가 표준치료로 충분히 제공되지 않거나, 환자가 비용과 거리 문제 때문에 지속적으로 복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WHO는 이전 자료에서 저자원 환경의 겸상적혈구병 소아 가운데 50~90%가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지역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드록시우레아를 포함한 치료와 관리가 표준적으로 제공되지 않거나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인용 캡슐’만 있어서는 소아 치료가 어렵다
WHO가 이번에 특별히 강조한 부분은 소아용 제형이다.
하이드록시우레아는 체중을 기준으로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 약이다. 어린이는 연령과 체중에 따라 필요한 용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용량 성인 캡슐만으로는 정확한 투약이 어렵다.
WHO는 2026년 7월 소아용 하이드록시우레아의 목표제품특성, 즉 TPP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제형과 용량, 투여 편의성, 안정성, 포장, 가격, 체중별 용량 조절 가능성 등이 포함됐다. 특히 저자원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소아친화적 제형을 강조했다.
즉 치료 접근성은 약이 창고에 있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린이가 실제로 복용할 수 있는 형태로 공급되는지도 중요하다.
품질이 보장된 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과제
WHO는 이번 조치와 함께 겸상적혈구병 치료제를 대상으로 첫 사전적격성평가 참여의향서도 제시했다.
WHO 사전적격성평가는 국제조달에 사용할 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 유효성을 검토하는 제도다. 이 절차를 통과한 제품이 늘어나면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가 품질이 확인된 의약품을 보다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이번 대상에는 소아용 하이드록시우레아 제형과 500mg 캡슐이 포함됐다.
이는 특정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효과가 확인된 기존 약을 더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춘 조치다.
조기진단이 안 되면 치료 시작도 늦어진다
약을 공급해도 환자가 진단되지 않으면 치료는 시작되지 않는다.
겸상적혈구병은 유전질환이기 때문에 출생 직후 또는 영유아기 검사를 통해 조기에 확인하면 감염 예방과 약물치료를 빠르게 시작할 수 있다.
WHO는 2026년 지침에서 진단과 합병증 예방, 임상관리 전반을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소아·청소년 0~19세를 대상으로 7개 우선영역에 걸쳐 15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이 중 하이드록시우레아는 한 요소일 뿐이다. 조기진단과 예방접종, 감염관리, 정기 추적관리가 동시에 이뤄져야 치료 효과가 유지될 수 있다.
감염 예방도 생존을 좌우한다
겸상적혈구병 어린이는 비장 기능이 떨어질 수 있어 특정 세균 감염에 특히 취약하다.
따라서 예방접종과 감염의 조기 진단, 적절한 항생제 치료는 사망 위험을 낮추는 기본적인 관리수단이다.
WHO 역시 하이드록시우레아와 함께 예방접종을 효과적인 개입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겸상적혈구병 치료는 특정 약 하나를 공급하는 문제로 축소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1차의료 체계와 백신 접근성, 감염관리, 검사와 약물 공급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치료제보다 ‘치료체계’가 부족한 문제
WHO의 새 접근은 겸상적혈구병 문제를 의약품 부족으로만 보지 않는다.
임상지침을 만들고, 우선 치료제를 선정하며, 소아용 제형 기준을 정하고, 품질이 보장된 제품의 국제조달 경로까지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정부와 제약회사, 규제기관, 연구자, 재정지원기관, 조달기관, 의료진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약이 있어도 국가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지 않거나, 조달예산이 부족하거나, 지역 의료기관까지 배송되지 않으면 환자는 치료받을 수 없다.
따라서 겸상적혈구병의 격차는 치료기술의 부족보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격차에 더 가까운 측면이 있다.
첨단 유전자치료 시대에도 기존 약 접근성이 먼저다
겸상적혈구병 치료 분야에서는 최근 유전자치료와 새로운 생물학적 제제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WHO도 향후 치료환경 변화에 대비해 유망 신약과 유전자치료 기술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질병부담이 가장 큰 지역의 우선순위는 첨단 치료제보다 하이드록시우레아와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접근성에 있다.
수십만달러에 이를 수 있는 첨단 유전자치료가 등장하더라도 신생아 진단과 예방접종, 기본적인 약물 공급조차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직접적인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글로벌 보건에서 기술혁신과 접근성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사례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생존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WHO가 이번 발표에서 강조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치료 효과가 확인된 약이 있음에도 태어난 지역에 따라 치료 여부와 생존 가능성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21년 5세 미만 약 8만1100명의 사망이라는 숫자는 겸상적혈구병이 여전히 소아 생존의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전체 환자의 약 80%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질환의 유전적 특성만큼 의료 접근성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이드록시우레아는 새로운 신약이 아니다. 이미 효과가 확인된 치료제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다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아이에게 정확한 용량과 적절한 제형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다.
조기진단과 예방접종, 약물치료와 추적관리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의약품 하나만으로 사망률을 크게 낮추기 어렵다.
겸상적혈구병의 치료 격차는 ‘치료제가 없는 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제가 있는데도 닿지 않는 질환’의 문제다. WHO의 새 권고가 실제 효과를 내려면 지침과 의약품을 지역 의료현장까지 연결하는 마지막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