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쓰기 전에 ‘미니 종양’에 먼저…항암제 선택 바꾸는 오가노이드
암 환자에게 어떤 항암제가 가장 잘 들을지를 치료 전에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어떨까.
현재 암 치료에서는 암의 종류와 병기, 유전자 변이, 단백질 발현 등을 분석해 치료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같은 암종이고 비슷한 유전자 특징을 가진 환자라도 실제 약물 반응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유전자 검사에서 특정 표적이 확인됐다고 해서 해당 약물이 반드시 효과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기존 검사만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약에 반응하는 환자도 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주목받는 기술이 ‘환자유래 오가노이드’다.
환자의 암 조직 일부를 떼어내 실험실에서 3차원으로 배양해 작은 종양 모델을 만든 뒤, 여러 항암제를 직접 투여해 어떤 약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이 기술이 단순히 ‘미니 종양을 만들어 연구한다’는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환자가 실제 치료를 시작하기 전 여러 약물을 빠르게 시험하고, 그 결과를 치료 선택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배양속도와 검사 처리량을 높이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7일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는 유방암 환자 조직으로 만든 오가노이드를 384개의 작은 배양공간에서 동시에 키우는 고속 약물검사 플랫폼이 제시됐다. 연구진은 기존 배양법보다 오가노이드 배양 성공률을 높이고 실제 환자의 항암치료 결과와 비교하는 단계까지 진행했다.
암세포를 평평하게 키우던 실험의 한계
항암제를 개발할 때 가장 오래 사용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암세포를 배양접시에서 키운 뒤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다.
이른바 2차원 세포배양이다.
실험이 비교적 간단하고 많은 약물을 빠르게 시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종양은 평평한 세포층이 아니다.
암세포는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고, 같은 종양 안에서도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세포들이 섞여 있다.
세포 주변에는 세포외기질과 혈관, 면역세포, 섬유아세포 등이 존재하며 산소와 영양분 농도도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2차원 배양에서는 이런 환경을 충분히 재현하기 어렵다.
동물의 몸에 사람의 암 조직을 이식해 키우는 환자유래 이종이식 모델은 실제 종양 특성을 더 잘 보존할 수 있지만 비용이 높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다.
2026년 발표된 환자유래 종양 오가노이드 리뷰에서도 기존 2차원 세포주는 종양의 다양성과 공간적 구조를 잃기 쉽고, 이종이식 모델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대량 약물검사에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 암조직이 실험실에서 작은 종양으로 자란다
오가노이드는 세포를 단순히 접시 위에 펼쳐놓는 방식과 다르다.
세포가 3차원 공간에서 스스로 배열되며 실제 장기나 종양의 일부 구조와 기능을 재현한다.
암 환자의 수술조직이나 생검조직에서 암세포를 분리해 배양하면 환자유래 종양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가노이드는 원래 종양의 유전적·조직학적 특성을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가 축적돼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약을 직접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오가노이드를 여러 개로 나눈 뒤 항암제 A, B, C를 각각 처리해 어떤 조건에서 세포가 가장 많이 죽는지 비교할 수 있다.
유전자검사가 암의 특징을 읽고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약을 추론하는 방식이라면, 오가노이드 검사는 환자의 암세포 자체에 약물을 적용해 반응을 직접 확인하는 ‘기능적 검사’에 가깝다.
국내 연구진, 384개 공간에서 동시에 항암제 시험
이번 국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오가노이드를 얼마나 많이, 안정적으로 시험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유방암 환자유래 오가노이드를 ‘384행잉 필러 플레이트’라는 플랫폼에서 배양했다.
세포가 바닥에 붙지 않도록 작은 기둥 형태의 구조에서 3차원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 일반 웰 플레이트에서는 오가노이드 배양 성공률이 약 50%였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약 70%까지 높아졌다.
오가노이드 약물검사가 환자 치료에 사용되려면 높은 배양 성공률이 중요하다.
조직을 받아도 오가노이드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면 검사 결과 자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384개’라는 규모다.
작은 공간을 다수 배치하면 한 환자의 적은 조직으로도 여러 약물과 여러 농도를 동시에 시험할 수 있다.
정밀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료 결정 시점 안에 충분한 수의 약물을 비교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오가노이드에서 잘 들은 약이 환자에게도 잘 들을까
기술이 실제 의료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실험실의 미니 종양에서 잘 듣는 약이 실제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느냐다.
최근 연구들은 이 문제를 직접 비교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발표된 진행성 고형암 연구에서는 164개 종양 검체의 오가노이드 구축을 분석하고, 실제 임상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2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 반응을 비교했다.
연구에서 환자유래 종양 오가노이드 기반 약물검사의 실제 임상치료 결과 예측 정확도는 85.0%, 민감도는 86.7%, 특이도는 80.0%로 나타났다.
상당히 높은 수치지만 곧바로 치료 결정을 오가노이드에 맡길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환자 수가 적고 다양한 암종이 섞여 있으며, 더 큰 규모의 전향적 다기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 역시 오가노이드를 독립적인 치료 결정 도구가 아니라 맞춤치료를 보조할 수 있는 검사로 평가했다.
유전자 검사와 경쟁하는 기술은 아니다
오가노이드 연구가 발전하면서 유전자검사를 대신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지만 두 검사의 역할은 다르다.
유전자검사는 암세포 안에 어떤 변이가 있는지 찾아낸다.
특정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면 해당 변이를 겨냥한 표적치료제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오가노이드는 약을 직접 적용해 실제 세포 반응을 본다.
따라서 앞으로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유전체 정보와 오가노이드 약물 반응을 함께 분석하는 방향이 더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같은 KRAS 변이를 가진 암이라도 모든 환자가 동일한 약물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올해 미국암연구학회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는 대장암과 췌장암 환자에서 만든 135개의 오가노이드에 유전체와 전사체 정보를 결합해 표적치료제와 KRAS 억제제 반응을 분석하는 접근이 제시됐다.
암의 유전적 설계도를 읽는 것과 실제 약물 반응을 시험하는 것을 결합하려는 것이다.
‘동물실험 대체’도 오가노이드가 주목받는 이유
오가노이드의 활용 범위는 개인별 항암제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신약개발 과정 자체에서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신약 후보가 사람에게 사용되기 전에는 효과와 독성을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비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동물실험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동물에서 나타난 반응이 사람에게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미 FDA는 지난해부터 신약개발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물시험을 줄이고 사람의 생물학적 반응을 더 잘 반영하는 새로운 시험법을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 3월에는 이른바 ‘새로운 접근방법론(NAMs)’을 신약개발에 활용할 때 필요한 검증 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3차원 오가노이드와 스페로이드, 장기칩,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이 포함된다.
오가노이드가 더 이상 흥미로운 대학 연구실 기술에만 머물지 않고 규제기관이 신약 안전성 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동물실험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가노이드를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할 기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작은 조직모델 하나가 사람 전체의 복잡한 생리반응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물이 간에서 어떻게 분해되는지, 혈액을 따라 어떻게 이동하는지, 심장과 신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하나의 종양 오가노이드만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면역계의 반응 역시 중요한 문제다.
일반적인 종양 오가노이드에서는 환자의 면역세포와 혈관, 섬유아세포 같은 종양 미세환경 구성요소가 충분히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26년 환자유래 오가노이드 임상적용 리뷰도 조직 채취 방법과 배양액, 세포외기질, 배양기간, 약물반응 측정법이 연구기관마다 달라 결과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을 주요 한계로 꼽았다.
따라서 현재 오가노이드는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한 번에 없애는 기술이라기보다 기존 모델의 빈틈을 채우는 인간 기반 연구도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환자마다 오가노이드가 잘 자라는 것도 아니다
임상 적용에서 또 하나의 장애물은 시간이다.
암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에게 몇 달 뒤 검사 결과가 나온다면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
조직을 확보한 뒤 오가노이드가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양세포가 충분하지 않거나 조직이 괴사돼 있을 수 있고, 배양 중 오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암종에 따라 세포 성장속도도 다르다.
2026년 리뷰에서는 환자유래 오가노이드 구축 성공률이 암종과 검체 상태, 채취방식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성장속도가 느리면 치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국내 연구에서 기존 약 50%였던 배양 성공률을 새로운 플랫폼에서 약 70%로 높인 결과가 의미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오가노이드 정밀의료의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정교한 미니 종양을 만드는가뿐 아니라 얼마나 빨리, 안정적으로 만들어 결과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같은 종양 안에서도 살아남는 세포가 다르다
오가노이드 기술이 보여주는 또 다른 가능성은 종양 내부의 다양성이다.
암은 하나의 균일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다.
같은 종양 안에서도 항암제에 민감한 세포와 저항하는 세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올해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된 전이성 대장암 오가노이드 연구에서는 기존의 전체 세포 생존율만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항암제에 살아남은 소수의 저항성 세포집단을 놓칠 수 있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연구진이 별도 분석법을 사용했을 때 일부 검체에서는 전체의 15% 미만인 저항성 세포집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 오가노이드 검사가 단순히 ‘이 약이 듣는다, 안 듣는다’를 판정하는 것을 넘어 어떤 세포가 치료 후 살아남아 재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니 장기’에서 실제 치료도구가 되려면
오가노이드가 연구실에서 환자 곁으로 오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단계가 많다.
병원마다 같은 조직을 받아 같은 방법으로 배양했을 때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어떤 약물농도를 사용하고 어떤 기준에서 민감하거나 내성이 있다고 판단할지도 표준화해야 한다.
오가노이드에서 효과가 있다고 나온 약을 실제 환자에게 사용했을 때 치료 결과가 개선되는지를 전향적 임상시험으로 입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격과 검사시간,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 역시 실제 의료 도입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최근 흐름은 분명하다.
환자의 암 유전자만 읽던 정밀의료가 이제는 그 환자의 살아 있는 암 조직에 약을 직접 시험해보는 단계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384개의 작은 배양공간을 이용해 환자유래 유방암 오가노이드의 약물검사 효율을 높인 연구와, FDA가 오가노이드를 새로운 비동물시험 방법 가운데 하나로 공식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변화는 이 기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약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같다.
실험실에서 효과가 있었던 약이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인가.
오가노이드는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주는 기술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환자의 세포로 만든 작은 조직에서 치료 반응을 직접 확인함으로써 동물과 사람, 유전자 정보와 실제 약효 사이에 존재했던 간극을 좁히려 하고 있다.
앞으로 오가노이드 기술의 가치는 얼마나 사람의 장기를 닮게 만들었느냐보다, 실제 환자에게 듣는 약과 듣지 않는 약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느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