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넘어도 건강한 사람들의 비밀 찾는다…‘한국인 초고령자 코호트’ 본격 구축

의료정책/제도의학연구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90세 이후에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요인을 찾기 위한 국가 차원의 장기 추적 연구에 나선다.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90세 이상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조건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겠다는 취지다.

질병관리청은 국립보건연구원이 ‘한국인 초고령자 코호트’ 구축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닌 평소 살던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면서 기본적인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9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다. 국립보건연구원은 2028년까지 약 1천명을 모집해 건강 상태와 생활환경, 신체 기능 변화를 장기간 추적할 계획이다.

코호트는 특정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조사해 건강 변화와 질병 발생, 기능 저하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는 연구 방식이다. 이번 초고령자 코호트는 90세 이상 어르신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지, 어떤 요인이 노쇠나 돌봄 필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는 2024년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90세 이상 인구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90세 이상 인구는 2020년 27만4천여명에서 2025년 37만4천여명으로 5년 만에 약 10만명 늘었다. 증가율은 36.5%에 이른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서는 90세 이상 인구가 2022년 약 27만명에서 2052년 약 200만명으로 약 7.4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초고령층에 대한 국내 연구 자료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그동안 한국인유전체역학조사사업, 한국도시농촌어르신 연구, 노인노쇠코호트 연구 등을 통해 고령자의 건강노화와 노쇠 위험요인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주로 중장년층이나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해, 90세 이후 초고령층의 건강 특성과 삶의 변화까지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코호트는 그 공백을 메우는 연구다. 국립보건연구원은 90세 이상 어르신의 건강 상태, 생활습관, 걷기 능력, 근력, 기억력, 영양 상태, 마음건강, 사회적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혈액과 소변 등 인체자원도 수집해 건강노화와 관련된 생물학적 요인을 함께 분석할 예정이다. 단순 설문에 그치지 않고 신체 기능, 인지 기능, 사회적 관계, 생물학적 지표를 함께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본격 조사에 앞서 국립보건연구원은 2025년 예비조사를 진행해 9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조사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지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7월부터 참여자 모집과 기반조사를 시작한다. 이후 추적조사를 통해 건강 유지, 기능 저하, 노쇠 진행, 돌봄 필요 발생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장기간 관찰한다.

이번 사업은 초고령자 보건의료 정책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90세 이상 인구가 크게 늘면 의료 이용, 장기요양, 통합돌봄, 지역사회 건강관리 수요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초고령자가 같은 방식으로 노화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90세 이후에도 스스로 생활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짧은 기간에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쌓여야 맞춤형 예방과 돌봄 정책도 가능해진다.

국립보건연구원은 구축된 데이터와 인체자원을 국내 연구자와 민간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초고령자 건강관리, 노쇠 예방, 장기요양, 지역사회 통합돌봄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해외 주요 초고령자 코호트와 비교 가능한 한국형 연구 기반을 마련해, 한국인의 생활환경과 유전적·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건강장수 연구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재필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장은 90세 이상 어르신의 건강 변화를 국가 차원에서 장기 추적한다는 점에서 이번 코호트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립보건연구원이 축적해온 코호트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신뢰도 높은 국가 건강노화 데이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초고령사회 대응의 핵심은 오래 사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연구를 통해 건강노화와 노쇠 예방, 돌봄 부담 완화에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초고령사회 대응 정책 마련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인 초고령자 코호트는 앞으로 한국 사회가 마주할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을 찾는 연구가 될 수 있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를 넘어 “어떻게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90세 이후에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건강 요인이 밝혀진다면, 노년의 삶을 질병과 돌봄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바뀔 수 있다. 초고령사회 정책의 초점이 치료와 관리에서 예방과 건강 유지로 옮겨가는 출발점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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