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조발성 치매 진행 예측 길 열렸다

질병/치료

65세 이전에 증상이 시작되는 조발성 치매를 혈액검사로 더 정밀하게 진단하고, 질병 진행 속도까지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국내 연구에서 확인됐다. 기존에는 뇌척수액 검사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처럼 비용과 접근성 부담이 큰 검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가 임상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근거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국내 조발성 치매환자 코호트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혈액검사 지표가 치매 유형별 특성과 질병 진행 양상을 구분하는 데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뇌질환 연구기반 조성 연구사업인 ‘브리지’(BRIDGE)를 통해 구축된 조발성 치매환자 코호트 자료를 활용해 진행됐다.

조발성 치매는 일반적으로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를 뜻한다. 대표적인 유형은 조발성 알츠하이머병과 전두측두엽치매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시작되는 만큼 환자는 직장 생활과 가족 부양, 사회활동을 이어가던 시기에 갑작스럽게 인지기능 저하를 겪게 된다. 이 때문에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경제적·심리적 부담도 크다. 하지만 증상과 진행 양상이 다양해 조기 진단과 경과 예측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 245명과 전두측두엽치매 환자 77명 등 총 322명을 약 2년간 추적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혈액검사로 측정한 주요 바이오마커 수치와 인지기능 변화, 임상 증상 악화 정도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이 된 주요 지표는 알츠하이머병 병리와 관련된 인산화 타우 단백질인 p-tau217, 뇌의 별아교세포 활성화와 관련된 GFAP, 신경세포 손상과 신경퇴행을 반영하는 NfL 등이다. 이들 지표는 최근 세계적으로 혈액 기반 치매 진단과 예후 예측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다.

연구 결과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는 혈액 내 주요 바이오마커 수치가 높을수록 인지기능 저하와 임상 증상 악화가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다. 또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주요 바이오마커 수치가 모두 증가해, 이들 지표가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의 질병 진행을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됐다.

전두측두엽치매 환자에서는 다른 양상이 관찰됐다. 일부 바이오마커가 인지기능 저하와 관련성을 보였지만,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에서 확인된 패턴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같은 조발성 치매라도 질환 유형에 따라 혈액 지표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향후 혈액검사 결과를 단순히 치매 여부 판단에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질환 유형 구분과 예후 예측, 맞춤형 관리 전략 수립에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국내 조발성 치매 환자군을 장기간 추적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 혈액 기반 치매 바이오마커 연구는 주로 고령 알츠하이머병이나 해외 환자군을 대상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유전성 치매가 아닌 국내 조발성 치매 환자에서 혈액 바이오마커와 실제 임상 경과의 관련성을 분석한 연구는 제한적이었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향후 조발성 치매 환자의 질병 진행 위험 평가, 임상시험 대상자 선별, 치료 반응 모니터링, 환자 맞춤형 관리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혈액검사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고 반복 측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질병 경과를 추적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장혜민 서울아산병원 교수와 김은주 부산대병원 교수 연구팀은 조발성 알츠하이머병과 전두측두엽치매에서 혈액 바이오마커의 임상적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두 질환은 증상이 겹쳐 초기 감별이 어려운 경우가 있지만, 병리적 원인과 진행 양상이 다른 만큼 향후 질환별 특성을 반영한 예후 예측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혈액 바이오마커뿐 아니라 뇌영상, 유전체 정보 등을 연계한 통합 분석을 확대할 계획이다. 조발성 치매는 발병 시기와 증상, 진행 속도에서 개인차가 큰 만큼, 여러 정보를 함께 활용해야 환자별 위험도와 관리 시점을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이번 성과가 국가 주도로 구축한 조발성 치매 코호트가 예후 예측 연구에 활용된 중요한 사례라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앞으로도 치매 조기 선별과 예후 예측 연구를 통해 환자와 가족이 질병에 미리 대비하고 적절한 관리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연구 성과로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혈액검사만으로 치매를 확정 진단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추가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조발성 치매에서도 혈액 속 생체 신호가 질병의 유형과 진행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치매 진단이 더 빠르고 간편해지고, 환자별 진행 위험을 예측해 관리하는 시대가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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