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진단지원 확대됐지만… 진단까지 5년, 환자들은 여전히 ‘길 위에’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5년. 증상이 있어도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병원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올해 희귀질환 진단지원 프로그램의 대상을 확대하고 예산을 증액했다. 하지만 환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멀고 험한 길 위에 있다. 질병관리청은 2025년부터 희귀질환 진단지원 대상자를 4천 명에서 6천 명으로 늘리고, 유전자 검사를 포함한 진단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지원보다 접근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의학유전학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희귀질환 환자 한 명이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4.8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평균 5곳 이상의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비용으로만 수백만 원이 들어간다. 의료진의 경험 부족과 지역별 격차는 진단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기관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지방의료원이나 중소병원은 검사 연계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전북 정읍에 사는 김 모 씨(10세, 가명)는 생후 3개월부터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증상을 보였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병명은 몰랐다. 3년이 지나 서울의 대학병원에서야 ‘척수성 근위축증’으로 진단받았다. 김 씨의 어머니는 “서울까지 여섯 번이나 올라갔어요. 검사비만 300만 원 넘게 들었는데, 진단받았을 땐 이미 아이 근육이 많이 굳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진단을 받는 순간이 기쁨이 아니라, 너무 늦은 통보처럼 느껴졌다는 그의 말에는 제도의 사각지대가 드러나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희귀질환 예산을 전년 대비 18% 증액한 820억 원으로 확정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진단지원 사업에 투입된다. 그러나 지원금은 진단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며, 약제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희귀질환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진단 이후에도 치료제 접근이 가능한 환자는 전체의 2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유전자 치료제나 희귀질환 신약은 건강보험 급여화 절차가 길고, 약가 협상 과정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진단 여정’을 단축할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한의학유전학회 관계자는 “희귀질환은 조기진단이 곧 치료 기회다. 진단비보다 중요한 건 지역 간 연계 네트워크”라며 “지방 병원에서도 기본 유전자 검사와 상담이 가능하도록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희귀질환이 ‘극소수의 문제’로 남는다면 결국 국가 전체의 건강 형평성을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은 내년부터 희귀질환 통합정보시스템을 운영해 환자·의료기관·지자체 간 정보 접근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아직 더디다. 여전히 일부 병원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공유하지 않고, 다른 기관으로 전송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린다. 행정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환자들의 ‘진단 지연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희귀질환 환자에게 ‘진단’은 이름을 얻는 일이다. 진단이 곧 치료의 시작이자, 국가 제도에 편입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을 얻기까지의 시간은 여전히 길고, 그 길은 각자의 체력과 비용, 운에 따라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희귀라는 단어가 곧 소외를 뜻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의 의료 복지는 가장 작은 집단에서부터 증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숫자는 늘었지만 길은 여전히 멀다. 진단은 제도의 통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과 눈물로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