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에도 ‘표적치료’ 시대 열리나…미 FDA 첫 RAS 억제제 승인, 한국 환자에 남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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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은 오랫동안 표적치료의 진전이 가장 더딘 암 가운데 하나였다. 암을 일으키는 핵심 유전자 변이가 비교적 뚜렷한데도 정작 그 변이를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약은 거의 없었고, 전이성 환자의 치료는 수십 년 동안 항암화학요법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그런 췌장암 치료에 중요한 변곡점이 생겼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8월 26일 전이성 췌장선암 환자를 위한 경구용 RAS 억제제 다라존라십(daraxonrasib·제품명 라손크)을 승인하면서, 췌장암에서도 암의 핵심 구동 신호를 직접 차단하는 치료가 실제 임상에 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승인은 이미 한 차례 이상 전신치료를 받은 성인 전이성 췌장선암 환자, 또는 여러 항암제를 병용하는 치료를 견디기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RASolute 302 3상 임상에서는 500명의 환자가 다라존라십과 기존 표준 항암치료군으로 나뉘어 치료받았는데, 전체 환자군의 중앙 전체생존기간은 다라존라십군 13.2개월, 표준 항암치료군 6.7개월로 나타났다. 무진행생존기간도 각각 7.2개월과 3.6개월이었고, 객관적반응률은 30%와 11%로 차이가 났다. 췌장암의 치료 성적을 감안하면 임상적으로 의미가 큰 결과다.

한국 독자에게 이번 소식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에서 새 약 하나가 승인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2019~2023년 진단 환자 기준 17.0%에 그치고, 원격 전이가 있는 경우에는 2.4%까지 떨어진다. 전체 암의 5년 상대생존율이 73.7%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예후가 매우 나쁜 암이다. 더구나 국내에서도 다라존라십을 이용한 1차 치료와 수술 후 보조치료 임상 3상이 이미 진행되고 있어, 이번 FDA 승인은 향후 한국 치료 현장과도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췌장암은 왜 표적치료가 이렇게 늦었나


췌장암, 특히 가장 흔한 췌관선암의 생물학적 특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유전자가 RAS다. FDA는 췌장선암 환자의 상당수에서 RAS가 종양 성장을 이끄는 핵심 단백질로 작동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NEJM에 발표된 RASolute 302 논문도 췌관선암 환자의 90% 이상에서 종양성 RAS 변이가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RAS가 오랫동안 약물로 공략하기 어려운 표적으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암세포 표면의 수용체나 특정 효소처럼 약물이 붙기 좋은 구조를 가진 표적과 달리 RAS 단백질은 약물이 안정적으로 결합할 만한 공간이 적고, 세포 내부의 복잡한 신호망과 연결돼 있어 선택적으로 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췌장암에서는 표적이 존재하면서도 그 표적을 직접 치료로 연결하기 어려운 역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부 유전자 변이에 맞춘 치료법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적용 환자군이 제한적이었고, 대다수 환자는 폴피리녹스나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 같은 항암화학요법을 기본으로 치료받아야 했다.

다라존라십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특정 KRAS 변이 하나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활성화된 RAS 단백질을 억제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기존 변이 특이적 치료제보다 더 넓은 췌장암 환자군을 겨냥할 가능성이 있다. FDA가 이번 약을 췌장암에서 승인된 첫 RAS 표적치료제로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존기간 두 배’라는 숫자, 어떻게 봐야 하나


이번 승인에서 가장 강하게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13.2개월과 6.7개월이다. 다라존라십군의 중앙 전체생존기간이 기존 항암치료군보다 거의 두 배 길었다는 의미다. 다만 이 숫자를 모든 췌장암 환자가 6개월 이상 더 산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중앙생존기간은 치료받은 환자 집단의 절반이 생존해 있는 시점을 뜻하며, 개인별 치료 결과를 그대로 예측하는 수치는 아니다. 환자의 나이와 전신 상태, 이전 치료 반응, 종양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실제 생존기간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임상적 의미는 분명하다. 치료 경험이 있는 전이성 췌장암 환자에서 기존 항암치료 대비 전체생존기간과 무진행생존기간, 반응률이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개선됐고, 사망 위험을 나타내는 전체생존기간 위험비는 0.40으로 보고됐다. 연구 설계와 환자군을 고려하면 기존 2차 치료의 한계를 넘어선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결과가 췌장암을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바꿨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13개월 안팎의 중앙생존기간 역시 여전히 충분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환자에서 결국 질병 진행과 내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표적치료가 들어오면 ‘유전자 검사’의 의미도 달라진다


RAS 억제제가 췌장암 치료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진단 단계에서의 분자검사도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일부 환자에서는 BRCA나 NTRK, MSI 같은 바이오마커를 확인해 표적치료나 면역치료 가능성을 찾았지만, 적용되는 환자 비율은 높지 않았다.

반면 RAS는 췌장암에서 매우 흔한 변화다. 따라서 RAS 신호를 직접 겨냥하는 치료제가 여러 치료 단계로 확대되면, 췌장암 역시 암의 위치와 병기뿐 아니라 종양의 분자 특성을 함께 보고 치료 순서를 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RASolute 303 3상은 전이성 췌장선암의 1차 치료에서 다라존라십 단독 또는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과의 병용을 기존 표준치료와 비교하고 있으며, 환자의 RAS 변이 상태를 확인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현재 2차 이후에 한정된 치료 위치가 1차 치료까지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치료 패러다임에서 보면 이 변화가 더 중요하다. 새 약 하나가 항암제 뒤에 추가되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 진단할 때부터 RAS 상태를 확인하고 어떤 환자에게 어떤 조합을 먼저 사용할지 결정하는 체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허가 전…하지만 국내 환자도 임상에 들어가 있다


한국 환자 입장에서는 한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이번에 다라존라십을 승인한 곳은 미국 FDA이며, 8월 27일 현재 국내 허가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다만 국내에서도 개발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월 전이성 췌장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다라존라십을 1차 치료로 평가하는 글로벌 3상 RASolute 303의 국내 시험을 승인했다. 전체 목표 환자 900명 가운데 국내에서는 56명 모집이 계획돼 있다.

수술이 가능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RASolute 304도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이 연구는 췌장암 절제술과 항암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다라존라십을 추가했을 때 재발을 늦출 수 있는지를 평가하며, 국내 목표 환자는 21명이다. 국내 포털은 이 약의 국내 허가 여부를 아직 ‘N’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 두 임상은 다라존라십의 향후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 승인 범위는 전이성 환자의 후속 치료에 가깝지만, 개발사는 처음 치료받는 전이성 환자와 수술 후 재발 위험이 있는 환자까지 치료 범위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수술 가능한 환자까지 효과가 확인되면 의미는 더 커진다


췌장암에서 장기 생존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치료는 여전히 수술이다. 문제는 진단 당시 이미 전이가 있거나 주변 혈관을 침범해 수술이 어려운 환자가 많고,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재발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최근 17.0%까지 개선됐지만, 병기에 따른 차이는 매우 크다. 암이 췌장에 국한된 경우 5년 상대생존율은 47.8%인 반면 원격 전이가 발생하면 2.4%에 불과하다. 이 격차는 췌장암 치료에서 조기 발견과 재발 억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다라존라십이 수술 후 보조치료에서도 효과를 입증한다면 의미는 현재 승인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전이된 이후 생존기간을 늘리는 치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술을 받은 환자의 재발 자체를 늦추는 치료로 역할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 검증 단계다. RASolute 304는 2030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로서는 재발 방지 효과를 확정적으로 말할 근거가 없다.


경구약이라고 해서 부담이 가벼운 치료는 아니다


다라존라십은 하루 한 번 먹는 경구제라는 점에서 정맥주사 항암치료보다 투여 편의성이 높을 수 있지만, 안전성 관리가 가벼운 약은 아니다. FDA는 피부와 연조직 독성, 구내염과 구강질환, 설사, 위장관 천공, 간질성폐질환 또는 폐렴, 태아 독성 등을 주요 경고·주의사항으로 제시했다. 흔한 이상반응으로는 발진, 설사, 구내염, 오심, 피로, 구토, 복통, 부종, 식욕 감소, 출혈 등이 보고됐다.

이 때문에 향후 국내에 도입되더라도 ‘먹는 표적치료제’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항암치료보다 편하고 쉬운 치료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환자 상태에 따라 용량 조절이나 치료 중단이 필요할 수 있고, 피부·폐·위장관 이상반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관리체계도 필요하다.

치료가 실제 임상현장에 들어오면 효과뿐 아니라 환자가 얼마나 오래 약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상반응으로 인한 용량 감량이나 중단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내성은 결국 다음 숙제다


표적치료가 처음 등장할 때마다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암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약을 피해갈 것인가다.

RAS 신호를 억제하더라도 종양세포는 다른 신호경로를 활성화하거나 RAS 자체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잘 듣던 약이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떨어지는 내성은 다른 표적치료제에서도 반복돼 왔다.

이 때문에 다라존라십의 장기적 가치는 단독치료 성과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항암제와 병용했을 때 더 오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지, 다른 RAS 경로 억제제나 면역치료제와 어떤 조합이 가능한지, 내성이 발생한 뒤 사용할 수 있는 후속 치료가 있는지까지 연결돼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1차 치료 임상에 다라존라십과 젬시타빈·냅파클리탁셀 병용군이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 환자에게는 ‘언제 쓸 수 있나’가 다음 질문이다


미국 FDA 승인 직후 한국 환자와 가족이 가장 궁금해할 것은 국내에서도 이 약을 언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현재로서는 미국 승인이 곧 국내 처방 가능을 의미하지 않으며, 식약처 허가 신청과 심사, 이후 급여 여부 결정 등의 절차가 별도로 필요하다.

특히 췌장암처럼 치료 대안이 제한된 질환에서는 허가 속도뿐 아니라 환자가 실제 부담할 비용도 중요하다. 신약이 허가돼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환자 접근성이 크게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 이미 글로벌 3상 임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허가 논의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환자의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고 국내 의료진이 약물 사용 경험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FDA가 이번 다라존라십 심사를 국제 동시심사 협력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오르비스 체계에서 진행했다는 점 역시 다른 국가의 규제 검토가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심사에는 캐나다가 협력했고 유럽의약품청과 일본 규제당국이 옵서버로 참여했다.


췌장암 치료의 기준이 바뀌려면 아직 두 번의 확인이 더 필요하다


다라존라십 승인은 췌장암 치료에서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RAS라는 오랜 난제를 실제 생존기간 개선으로 연결했고, 경구 표적치료가 기존 항암화학요법보다 우월한 결과를 무작위 3상에서 보여줬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췌장암 치료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금 확인된 효과는 이전 치료를 받은 전이성 환자에서의 결과이며, 처음 진단받은 환자의 1차 치료와 수술 후 재발 방지 효과는 별도의 3상에서 검증 중이다. 장기간 사용했을 때의 내성과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안전성, 다른 치료와의 최적 조합도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허가와 급여라는 한 단계가 더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승인이 갖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췌장암 치료가 모든 환자에게 비슷한 항암제를 순서대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암세포를 움직이는 핵심 분자 신호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선택하는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1차 치료와 수술 후 치료 임상에 환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변화는 먼 해외의 신약 뉴스로만 볼 수 없다. 향후 몇 년 안에 임상 결과와 국내 허가가 이어질 경우 한국의 췌장암 진료 역시 RAS 검사와 표적치료를 중심으로 치료 순서를 다시 설계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췌장암에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질문은 수술할 수 있느냐, 어떤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느냐였다.

RAS를 직접 겨냥하는 치료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새로운 질문이 하나 추가됐다.

이 환자의 암을 움직이는 분자 신호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디까지 차단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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