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 많이 떼어낼수록 좋을까…치료의 기준이 ‘필요한 만큼’으로 바뀐다

암 수술에서는 오랫동안 한 가지 원칙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눈에 보이는 종양뿐 아니라 주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암세포까지 충분한 범위로 제거해야 재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술 범위를 넓히는 것은 암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최근 암 치료에서는 조금 다른 질문이 등장하고 있다.
수술 전에 항암치료나 면역치료를 받은 뒤 종양이 크게 줄어든 환자에게 처음 진단 당시 계획했던 범위만큼 반드시 수술해야 할까.
암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범위만 남기고 수술을 줄인다면 생존 가능성을 지키면서도 기능장애와 후유증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구강암과 유방암 등을 중심으로 이런 ‘치료 강도 낮추기’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핵심은 단순히 수술을 작게 하는 것이 아니다. 수술 전 치료에 얼마나 잘 반응했는지를 확인한 뒤 그 결과에 맞춰 수술 범위를 다시 결정하는 ‘반응 기반 수술’이다.
구강암 환자 63%에서 수술 부담 줄었다
최근 국제학술지 ‘Oral Oncology’에 발표된 연구는 이런 변화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수술이 가능한 국소 진행성 구강편평세포암 환자 70명을 분석했다. 이들은 수술 전에 항암치료 등 선행 전신치료를 받은 뒤 실제 수술에 들어갔다.
분석 결과 44명, 약 62.8%에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수술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종양을 절제해야 하는 범위 감소였다. 수술 부담 감소 사례 가운데 52%가 절제 범위를 줄인 데서 발생했고, 27%에서는 다른 부위의 조직을 가져와 결손을 메우는 유리피판 재건 필요성이 감소했다.
접근을 위해 필요한 수술 범위를 줄인 사례가 17%, 목 림프절 절제 범위를 줄인 사례도 일부 확인됐다. (pubmed.ncbi.nlm.nih.gov)
구강암에서는 수술 범위가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특히 크다.
혀나 입바닥, 볼 안쪽 조직을 넓게 절제하면 말하기와 씹기, 삼키기 같은 기본적인 기능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결손 부위가 크면 팔이나 허벅지 등의 조직을 이용한 재건수술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암 치료 성과를 유지하면서 절제 범위를 줄일 수 있다면 단순히 수술시간을 줄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덜 떼어냈는데 암이 남지 않았나’가 핵심
수술 범위를 줄이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안전성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게 떼어냈다가 암이 남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생길 수 있다.
암 수술에서는 절제한 조직의 가장자리에 암세포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제연 검사가 중요한 기준이다. 절제면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는 ‘음성 절제연’을 확보해야 암이 충분히 제거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번 구강암 연구에서 수술 범위를 줄인 환자의 97%가 음성 절제연을 확보했다. 선행치료 반응이 좋았던 환자일수록 수술 부담 감소 폭도 컸다. (sciencedirect.com)
다만 이를 모든 구강암 환자가 수술을 줄여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번 연구는 70명의 환자를 분석한 연구이며, 연구진도 수술 부담 감소를 향후 선행치료 임상시험의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는 단계다.
장기간의 재발률과 생존율, 어떤 환자에게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더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항암치료는 수술 전에 왜 할까
암 수술 전에 시행하는 치료를 선행항암치료 또는 선행 전신치료라고 한다.
과거에는 수술로 제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종양의 크기를 줄여 수술 가능성을 높이는 목적이 컸다.
최근에는 역할이 더 넓어졌다.
치료제가 실제 환자의 암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수술 전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양이 크게 줄거나 영상검사와 조직검사에서 암이 거의 사라진다면 해당 암이 사용한 치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보는 수술 이후 추가 치료를 결정하는 데도 활용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반응을 수술 범위까지 결정하는 자료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진단 당시 암의 크기만을 기준으로 수술을 결정하는 대신 치료 후 남은 암의 범위까지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유방암에서는 겨드랑이 수술부터 달라지고 있다
유방암에서는 이미 수술 범위를 줄이는 변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
과거 겨드랑이 림프절로 암이 퍼졌다고 판단되면 여러 개의 림프절을 넓게 제거하는 액와림프절 곽청술이 흔히 시행됐다.
문제는 후유증이다.
겨드랑이 림프절을 많이 제거하면 팔이 붓는 림프부종이나 팔 움직임 제한, 감각 이상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선행항암치료가 발전하면서 처음에는 림프절 전이가 있었지만 치료 후 전이가 사라지는 환자들이 늘어나자 모든 환자에게 광범위한 림프절 절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치료 전에 전이가 확인된 림프절에 표시를 해두고 치료 후 해당 림프절과 감시림프절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표적 액와 절제술’이 활용되고 있다.
올해 발표된 독일 AGO 유방암위원회의 2026년 권고안에서도 선행항암치료 전 1~3개의 의심 림프절이 있었지만 치료 후 임상적으로 림프절 전이가 보이지 않는 환자에게 표적 액와 절제술을 강하게 권고했다. (sciencedirect.com)
암 치료가 잘 된 일부 환자에게는 겨드랑이 전체를 넓게 수술하는 대신 필요한 림프절만 확인하는 방향으로 치료가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림프부종도 실제로 줄어들 수 있을까
수술 범위를 줄이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후유증 감소다.
올해 7월 발표된 유방암 연구에서는 선행 전신치료를 받은 림프절 양성 유방암 환자 256명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136명은 표적 액와 절제술을, 106명은 기존의 광범위 액와림프절 곽청술을 받았다.
림프부종 발생률은 표적 절제술군에서 12.7%, 광범위 절제군에서는 27.4%였다. 팔 기능 이상이나 운동범위 제한도 각각 18%와 33.9%로 차이를 보였다. (frontiersin.org)
다만 이 결과 역시 주의해서 해석해야 한다.
무작위로 두 수술법을 배정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환자의 암 병기와 치료 반응을 고려해 실제 수술법을 선택한 후향적 연구다. 두 집단의 환자 특성이 완전히 같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수술법 하나 때문에 결과 차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치료 반응이 좋은 환자에서 불필요한 림프절 제거를 피하면 수술 후 기능 손상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기존 연구 흐름을 뒷받침한다.
‘치료를 덜 한다’는 말이 위험할 수도 있다
암 치료 강도를 낮춘다는 표현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암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비용이나 편의를 이유로 줄인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한 개념은 ‘필요 이상의 치료를 줄이는 것’에 가깝다.
암의 종류와 병기, 유전자 특성, 선행치료 반응 등을 바탕으로 환자마다 필요한 치료 수준을 세밀하게 나누는 것이 목표다.
어떤 환자에게는 광범위한 수술이 여전히 가장 안전한 치료다.
선행치료 후에도 암이 많이 남아 있거나 림프절 전이가 지속되는 경우에는 기존 수술을 줄이지 않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치료 반응이 매우 좋은 환자에게 처음 계획했던 범위 그대로 광범위한 수술을 시행하면 암 치료 효과는 더 높아지지 않으면서 후유증만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치료 강도를 낮추는 전략에는 정교한 환자 선별이 필수적이다.
암 치료 성적이 좋아지자 ‘그 이후의 삶’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암 치료 성적의 향상도 있다.
암을 치료한 뒤 오랫동안 살아가는 환자가 늘면서 치료 과정에서 생긴 후유증이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유방암 수술 뒤 평생 지속될 수 있는 림프부종이나 구강암 수술 이후 발생하는 발음과 삼킴 장애는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 않을 수 있지만 환자의 직업과 사회생활, 식사,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암을 얼마나 많이 제거했는지만으로 좋은 치료를 평가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최근 암 치료에서는 생존율과 재발률뿐 아니라 신체기능과 외모 변화, 만성 통증, 삶의 질 같은 지표도 점점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수술 범위를 줄이려는 연구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많이 치료해야 안전하다’는 공식이 바뀌는 중
암 치료 역사를 보면 치료 강도를 낮추는 과정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유방암에서도 과거에는 유방 전체와 주변 조직을 광범위하게 제거하는 수술이 표준처럼 시행됐지만, 연구가 축적되면서 일부 환자에서는 유방보존수술과 방사선치료로도 충분한 치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림프절 수술 역시 광범위 절제에서 감시림프절 검사로 단계적으로 줄어왔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치료가 나왔기 때문에 무조건 수술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의 임상연구를 통해 적은 치료로도 기존 치료와 비슷한 암 관리 성과를 유지할 수 있다는 근거가 쌓일 때 표준치료가 바뀐다.
올해 발표된 한국 연구진의 유방암 수술 리뷰에서도 초기 수술과 선행치료 이후 수술 모두에서 겨드랑이 수술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향이 주요 흐름으로 정리됐다. (pubmed.ncbi.nlm.nih.gov)
앞으로는 영상검사와 병리검사, 치료 반응 평가가 더 정밀해질수록 이런 개인별 수술 전략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좋은 암 수술의 기준도 달라진다
암 수술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암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과거에는 충분히 넓게 제거하는 것이 재발 위험을 낮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수술 전에 얻은 치료 반응 정보를 이용해 어느 정도까지 제거해야 안전한지를 더 정밀하게 판단하려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구강암 연구에서 선행치료 이후 약 63%의 환자가 수술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최근 유방암 치료에서는 일부 환자에게 광범위한 겨드랑이 절제 대신 표적 수술을 적용하는 방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pubmed.ncbi.nlm.nih.gov )
그러나 암종마다 근거 수준은 다르고, 치료를 줄여도 안전한 환자를 정확하게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환자가 자신의 판단으로 수술이나 항암치료 범위를 줄여서는 안 된다. 현재의 암 종류와 병기, 치료 반응을 바탕으로 전문 의료진이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암 치료가 발전한다는 것은 반드시 더 많은 약을 사용하고 더 큰 수술을 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같은 생존 가능성을 지키면서 몸에 남는 손상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치료의 발전이다.
암은 충분히 치료하되 환자의 몸은 가능한 한 덜 손상시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