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이론 넘어 ‘상황별 대응’ 강화해야
국민신문고에 생활밀착형 예방교육 제안
사진 요구·불법 영상물 발견 때 대응법 안내 필요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을 실제 온라인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황별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민제안이 제기됐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 이용이 일상화된 만큼 개념과 처벌 규정을 전달하는 교육을 넘어 사진 요구, 불법 영상물 공유, 단체채팅방 유포 등 구체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7월 31일 국민신문고에 신청된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의 생활밀착형 강화’ 제안은 학교와 청소년시설에서 실제 사례를 활용한 체험형 교육을 확대할 것을 제시했다.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받았을 때의 대응법과 단체채팅방에서 불법 영상물을 발견했을 때의 행동요령을 짧은 동영상과 교육자료로 보급하자는 내용이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신고·상담기관도 스마트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제안은 정부가 채택하거나 시행을 확정한 정책은 아니지만, 현재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이 실제 위험 상황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청소년의 디지털 매체 이용은 이미 생활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4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청소년의 숏폼 콘텐츠 이용률은 94.2%에 달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이용률도 49.9%로 조사됐다. 청소년이 온라인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직접 제작하고 공유하는 환경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디지털 환경의 확대는 정보 접근성과 소통 기회를 높였지만 성적 이미지와 개인정보가 빠르게 복제·확산될 수 있는 위험도 키웠다. 사진 한 장이 개인 대화방에서 단체채팅방과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동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삭제한 게시물도 저장과 재전송을 거치면 완전히 회수하기 어렵다.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이 생활밀착형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생이 ‘디지털 성범죄는 나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위험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누군가 친밀감을 앞세워 사진을 요구하거나 유포를 협박할 때 어떻게 대화를 중단하고 증거를 보존해야 하는지까지 알아야 실제 대응이 가능하다.
단체채팅방에서 불법촬영물이나 성착취물을 발견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으로 영상을 열어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피해 확산에 가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신고해야 한다는 원칙만 제시해서는 부족하며, 영상을 재전송하지 않고 대화 내용과 계정 정보를 어떻게 보존할지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기존 학교 교육은 성폭력과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 관련 법률, 피해 유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초교육은 필요하지만 학생의 실제 온라인 이용환경과 연결되지 않으면 교육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2025년 초·중·고교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30분 분량의 예방교육 과정을 제작했다. 성평등가족부 예방교육통합관리시스템에도 디지털 성범죄 관련 동영상과 표준강의안 등이 제공되고 있다.
이제는 교육자료의 존재 여부보다 학생이 교육 이후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사진을 요구받은 학생이 화면을 닫고 보호자나 교사에게 알릴 수 있는지, 유포 협박을 받은 피해자가 대화방을 삭제하기 전에 증거를 보존할 수 있는지, 신고기관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수업도 일방적인 강의보다 상황 선택형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가상의 대화 화면을 제시한 뒤 어떤 답변을 해야 하는지, 계정을 차단하기 전 무엇을 저장해야 하는지, 친구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기관에 연결해야 하는지를 학생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연령별 교육 차별화도 필요하다. 초등학생에게는 개인정보와 사진 공유의 위험, 낯선 사람의 요구에 대한 거절 방법을 중심으로 알려야 한다. 중·고등학생에게는 교제관계에서의 촬영 요구, 온라인 그루밍, 유포 협박, 불법 영상물 소지와 공유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예방하고 성적 착취와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교육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에게도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교육할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예방교육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판단을 비난하거나 주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책임을 돌리면 신고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촬영과 전송에 동의했더라도 본인의 동의 없이 유포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친구와 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친구가 영상을 확인하겠다며 다시 전달받거나 주변에 사실을 알리면 2차 피해가 커질 수 있다. 피해자의 말을 믿고 영상물을 재생·공유하지 않으며 전문기관과 연결하는 행동을 교육해야 한다.
교사에게도 별도의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 학생이 피해를 알렸을 때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설명하도록 요구하거나 여러 교직원 앞에서 반복 진술하게 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안전을 우선 확인하고 증거 보존과 보호자 통보, 전문기관 연계를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신고·상담기관 정보는 학생의 기억에 남을 만큼 반복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피해 영상물 삭제와 재유포 방지, 상담, 수사·법률·의료지원 연계를 제공하고 있다. 경찰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을 통한 온라인 신고와 상담도 가능하며, 긴급한 상황에서는 112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상담기관 이름과 전화번호를 수업 마지막 화면에 한 차례 보여주는 방식으로는 접근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학교 홈페이지와 학생용 애플리케이션, 상담실 안내문, 교실 게시물에 신고 경로를 상시 노출하고 스마트폰으로 바로 연결할 수 있는 QR코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신고 과정에 대한 오해도 줄여야 한다. 피해 학생은 부모나 학교에 곧바로 알려질 것을 걱정하거나 자신의 휴대전화가 압수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신고를 미룰 수 있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조사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어떻게 보호되는지 사전에 안내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게시물 하나를 삭제했다고 종료되지 않는다. 2025년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전년보다 3.2% 증가한 1만637명의 피해자에게 상담과 삭제지원, 수사·법률·의료지원 연계 등 35만2000여 건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삭제지원이 전체 지원의 90.3%를 차지했으며, 지속 지원 피해자는 전년보다 26.3% 증가했다. 반복 유포와 장기 지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주요 특성임을 보여준다.
피해 발생 이후의 삭제지원도 중요하지만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가 커지기 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진을 요구받거나 유포를 협박받는 초기 단계에서 상담기관과 연결된다면 피해 영상의 확산과 반복 유포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학교 교육과 청소년시설 교육도 연계해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이나 장기결석 학생, 가정 밖 청소년은 정규 수업을 통한 예방교육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청소년쉼터 등에서도 동일한 핵심 내용을 제공해야 교육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학부모 교육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휴대전화를 일방적으로 검사하거나 이용을 금지하는 방식은 피해 사실을 숨기게 만들 수 있다. 자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비난하지 않고 대화를 보존하며 전문기관에 연결하는 방법을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도 예방교육과 분리해 볼 수 없다. 청소년에게 교육만 반복하면서 불법 영상물과 성착취 목적의 계정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방치해서는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 의심 계정 신고 절차와 차단 기능을 단순화하고 청소년 사용자가 위험한 메시지를 받았을 때 즉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국민신문고 제안의 핵심은 청소년에게 더 많은 이론을 가르치자는 데 있지 않다. 실제 스마트폰 화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위험을 보여주고, 그 순간 실행할 수 있는 대응법을 익히게 하자는 것이다.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은 위험을 경고하는 수업에서 행동을 훈련하는 교육으로 발전해야 한다. 사진 요구를 거절하는 방법과 증거 보존, 불법 영상물 재전송 금지, 신고·상담기관 연결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교육할 때 피해 예방과 초기 대응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